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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관계

《배트맨 비긴즈》 Why do we fall?

배트맨 비긴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Why do we fall, bruce? So we can learn to pick ourselves up." "왜 넘어지는지 알고 있니, 브루스? 스스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란다." 장난치다가 우물에 빠진 브루스 웨인(크리스찬 베일)을 꺼내주고 아버지가 하는 말이다. 이 대사는 브루스 웨인이 부모님의 사고를 기점으로 추락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배트맨으로 날아오르는 영화 전반의 스토리에도 적용된다. 그는 박쥐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트라우마를 오히려 자신의 무기로 만들어 적을 두렵게 하기에 이른다.

 

배트맨 비긴즈 포스터
질문은 답을 찾는다. Why do we fall?

 

브루스 웨인은 부모님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박쥐에 대한 두려움이 한데 묶여 추락의 굴레에 점점 빠져든다. 어린 시절에 겪은 문제는 나이를 먹은 뒤에도 영향을 미치곤 한다. 그것이 주는 경험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감정은 더 깊어지고 쉽게 일어난다.

 

이런 브루스 웨인은 스승 듀카드(리암 니슨)를 만나 두려움을 극복해나가기 시작한다.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려면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내야 해." 두려움이 뭔지 알게 되면 적들을 두렵게 만들수도 있다는 말일까? 듀카드는 브루스 웨인이 두려워하는 것을 마주하도록 만든다. 무엇이 두려운가? 왜 두려운가? 어떤 상황에 두려운가? 두려운 상황을 떠올리게 하고, 그것을 떠올리는 자신이 어떤지 느끼게 만든다.

 

점점 자신을 두렵게 만드는 상황과 친해지면 두려움이 점점 사그라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브루스 웨인은 두려움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Why do we fall? 왜 두려움에 빠지는가? 스스로 빠져나올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다. 떨어지면 올라갈 길을 찾으면 된다.

 

"죄의식과 당당히 맞서, 분노로 덮으려 하지 말고." 갈수록 죄의식이 강해지는 브루스 웨인은 억누를수록 튀어나오는 죄의식을 가리기위해 분노를 표출한다. 언뜻 보기에 분노였던 것이 사실은 죄의식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아본 듀카드는 죄의식을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한다.

 

"적이 아니라 네 안의 두려움, 이젠 자신과 맞서야 돼." 분노를 표출하며 외부의 적과 끝없이 싸워나가는 브루스 웨인은 7년이 되어가는데도 분노를 해소하지 못한다. 그가 정말로 맞서싸워야 했던 것은 자신 안에 있는 감정들이었다. 

 

예전과 다르게 변한 브루스 웨인은 이런 말을 듣는다. "지금의 널 말해주는 건 지금 너의 행동이지." 말로 어떻게 포장해도 실제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행동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진짜 내가 느끼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다른 이유를 포장하는 순간. 상대방에게서 그런 걸 느낄 때가 있는 걸 보면, 나의 그런 모습도 쉽게 들킨다는 것이리라.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네가 두려움이 되야 해." 처음에 들었을 때는 왜?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의미가 진하게 다가온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피하면 감정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잠시 몸을 숨겼다가 더 커진 몸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상황을 피하라는 것이다. 두려우면 두려운대로 죄의식이 느껴지면 느껴지는대로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감정을 그대로 느껴본다. 감정을 받아들이면 감정이 이해받으면 천천히 사그라들으리라.

 

Why do we fall? 우리는 왜 감정으로 인해 삶이 힘들어지는가? 그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이 질문을 통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연습이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언젠가는 배트맨처럼 힘을 얻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