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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관계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학교의 유명인 키리시마가 배구부 활동을 그만두는 금요일부터 시작해 그다음 주 화요일까지 벌어지는 일을 여러 사람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둘의 차이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해서 하고 있는지의 여부로 나뉜다. 바꿔 말하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를 외부에서 찾는가, 자신의 내부에서 찾는가라고 할 수 있다. 

 

키리시마의 친한 친구 3명은 키리시마의 배구부 연습이 끝날 때까지 셋이서 농구를 한다. 끝나고 같이 학원을 가기 때문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시작한, 즉 이유를 외부에서 찾은 경우다. 매일같이 농구를 하던 이들은 농구를 시작한 이유인 키리시마가 없어지자 재밌게도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인다.

 

어떤 친구는 "이제 농구할 필요 없잖아" 라고 말한다. 이 말에 다른 친구는 "그건 뭐.... 그냥 농구가 하고 싶으니까."라고 한다. 이렇게 이유를 외부에서 찾은 사람은 쉽게 그만두고, 내부에서 찾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재밌는 건, 후자의 경우처럼 이유가 중간에 바뀌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지막 한 명인 히로키는 별 말 없이 자리를 떠난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에서 히로키는 특별한 인물이다. 앞의 두 친구는 어떤 이유로든 시작할지 그만둘지를 결정한 반면, 히로키는 결정하지 못한다. 야구부에 소속되어 있고, 항상 야구가방을 들고 다니면서도 주말 시합에 출전해달라는 야구부 주장의 부탁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영화는 히로키의 태도를 통해 중간중간 말을 거는 것 같다. 어떤 이유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하는 것처럼.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포스터
나도 나만의 키리시마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유를 내부에서 찾는 대표적인 예는 영화부다. 응원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고문 선생님이 지은 제목인 '그대여 닦아줘요, 나의 뜨거운 눈물을.' 이 제목 때문에 영화부는 놀림을 당한다. 그리고 고문 선생님은 자신이 또 시나리오를 쓸테니 이 작품의 후속작을 찍으라고 강요한다.

 

자신의 꿈이 무시당하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히로키를 몰래 보기 위해 옥상에서 연주하는 취주악부 부장과 옥상에서 좀비가 침공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한 영화부 감독 마에다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취주악부 부장 : 그건, 무슨 놀이인가요?
마에다 : 네?
취주악부 부장 : 전 진지한 동아리활동이에요. 놀이라면 학교 밖에서 하세요.
마에다 : 아니, 노는 거라니... 진지하다고요, 우리들도!

 

영화 제목 보고 남의 꿈을 비웃는 사람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영화 부원들의 꿈을 막는 고문 선생님. 이런 방해에도 흔들리지 않고 영화부는 계획했던 좀비 영화를 찍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를 이야기할 때면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하는 그들의 취향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렇듯 이유를 내부에서 찾은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에서 정작 키리시마는 안 나온다. 키리시마가 배구부 활동을 그만두면서 삶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과 자신의 길을 가는 영화부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에서 키리시마가 안 나오는 건 어떤 외부의 요인보다 자신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해서 따라 하지 말고, 분위기 맞추기 위해서도 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부 감독인 마에다는 호감이 있는 여자애가 자신에게 영화와 관련해 말을 건다고 해서 영화를 더 열심히 찍지 않는다. 우연히 그녀가 남자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을 봐도 실망하여 영화를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신이 좀비 영화를 좋아하니까 찍는 것이다. 이것이 이유를 내부에서 찾는 사람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다.

 

어떤 이유로든 제대로 시작을 하지 못하는 히로키는 열성적으로 영화를 찍는 마에다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왜 시작을 못 하는지 깨닫게 된다.

 

히로키 : 아카데미 수상도 하나요?
마에다 : 뭐 그럴 일은 없으려나.
히로키 : 응?
마에다 : 영화감독은 무리야
히로키.  그럼, 어째서 이런 지저분한 카메라로 굳이 영화를 찍는 거야.
마에다 : 그건, 음... 아주 가끔씩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랑 지금 우리가 찍는 영화가 연결됐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그게 그냥 좋으니까.

 

학교라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얽혀있고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키리시마와 관련된 학생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감정적으로 동요하는데, 이것은 그 사람들과 관련된 다른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주는 2차 파장을 일으킨다. 이렇게 영향받는 이들과는 달리 자기의 것을 묵묵히 해나가는 이들이 있다. 같은 상황에서 흔들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이런 고민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이 일을 하면 어떨까? 이런 순간에 나만의 키리시마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